하루를 넘게 자긴 했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눈이 번쩍 뜨였다. 어둠 속이었고, 마비된 몸속 가득 눈이 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눈들이 녹아내렸다. 실패... 였다. 살아, 괴로운 몸을 일으킨 것은 마침 아침이었다. 변기까지 기어가 몇 번이고 토를 했고, 기어와 다시 한나절을 잤다는 생각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손을 뻗어 짚어본 JD의 이마는 얼어붙은 눈사람처럼 차갑고 서늘했다. 두 명의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겠다. 우선은 비스킷을 먹는 일에, 남은 우유를 먹는 일에 집중하고자 한다. 비스킷의 맛을 비로소 나는 느끼게 된다. 굳이 그 맛을 말해야 한다면 짜다, 라고 말하고 싶다.
다들 카페에서 만난 사이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란 카페였고 처음엔 JD와 나 둘만의 공간이었다. 하나 둘 늘어난 회원의 수가 어느새 스무명을 넘게 되었다. 몰랐다. 자살을 원하는 인간들이 그토록 많을 줄은 정말 몰랐다. JD는 좋은 리더였고, 유능한 리더였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마지막 남은 비스킷을 털어넣고는 나는 자리를 일어선다. JD에게 불만은 없다. 수면제니 무슨 유도제니... 식단을 짜기 위해 두 차례나 상하이를 다녀온 JD였다.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실은 말도 못하게 희귀한 특수 체질이거나... 아니면 바로
재수가 없었다는 것.
늘 그랬다. 재수도... 재주도 없었던 인생... 텅 빈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는 담배를 주문한다. 그리고 또... 순간접착제를 산다. 괜찮으세요?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여직원이 물었다. 뭐가... 요? 아까 저기서 토했잖아요. 아, 그거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신기하다. 남에게 관심을 가지는 인간이 다 있다니. 언제부터 인간이 남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이러는 걸까. 묘하게 살찐, 눈앞의 인간을 향해 나는 싱긋이 괜찮다는 표정을 지어준다.
제가 치우고 갈게요.
나는 말한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구요.
놀란 얼굴로 그녀가 답한다.
그뿐이다.
여전히 밤공기는 차고, 늙은 가등 하나가 문학작품이라도 집필하는 자세로 꼼짝 않고 서 있다. 세 구의 시신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감정의 기복을 느끼지 않았다. 애당초 정해진 일이었고, 오층 옥탑방을 스치는 전파의 수만큼이나 나는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했었다. JD는 여러모로 이론에 밝은 사람이었다. 실패할 확률이 의외로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리고 생일 축하해. 언젠가 그런 쪽지를 보내온 적도 있었다. 생일 축하해, 삶을 인정하는 JD의 그런 태도를 나는 무엇보다 높이 샀었다. 절대 믿어선 안 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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